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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9장 1 -5 “하나님을 만나는 자의 자세”
정영록 2016-04-23 추천 0 댓글 0 조회 180

느헤미야 91 -5 “하나님을 만나는 자의 자세

 

1절 그 달 이십사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여 굵은 베를 입고 티글을 무릅쓰며

2절 모든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열조의 허물을 자복하고

3절 아 날에 낮 사분지 일은 그 처소에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지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4절 레위 사람 예수와와 바니와 갓미엘과 스바냐와 분니와 세레바와 바니와 그나니는 대에 올라서서 큰 소리로 그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고

5절 또 레위 사람 예수와와 갓미엘과 바니와 하삽느야와 세레뱌와 호디야와 스바냐와 브다히야는 이르기를 너희 무리는 마땅히 일어나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찌어다 주여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송축하올 것은 주의 이름이 존귀하여 모든 송축이나 찬양에서 뛰어남이니이다.

 

특별히 24일이라고 언급한 내용은 초막절 행사가 완전히 끝나고 22일의 이틀후였습니다. 초막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신 후 광야 생활 중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이스라엘 대대로 알게하려는 것입니다. 이 날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 모여서 금식하여 기도할 만큼 중요한 날이였음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에스라 대제사장은 중요한 절기들이 지나고 한날을 선택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철저한 회개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한 것이었습니다.

교회도 특별새벽기도회,특별금식기도등으로, 모든 성도들이 다 모여서 회개기도와 예배를 주님께 드려지는데, 이와 같은 맥락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굵은 베를 입었다는 것은 죄의 자각으로 인하여서 애통한 마음의 표시입니다. 창세기 3734절을 보시면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라고 기록되어져있습니다. 이처럼 죄에 대해서 애통하는 마음을 표시하는 것이 굵은 베를 입는 행위입니다. 티끌을 무릅쓰는 것은 사무엘상 412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당일에 어떤 베냐민 사람이 진에서 달려 나와 그 옷을 찢고 그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고 실로에 이르니라

죄에 대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다가가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와 회개의 마음가짐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들도 이러한 노력과 열심히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원했습니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없이 주님께 나아간다면 자기자신이 실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꼭 우리가 몸이 아파야, 위기가 와야,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상황속에서도 우리마음 깊은 곳, 내면의 성찰을 통해서 회개의 마음을 심어 주님께 기도드려야 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2절 모든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열조의 허물을 자복하고

 

이 날에는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를 해야 했습니다. 많은 견해들이 있지만, 사업상으로 친교를 갔던 이방인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기로 헌신, 결단하는 날이었습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에는 사업상 사중하던 이방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를 자복하는 시간만큼은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을 자중해야 했습니다. 사업상 피해가 올지라도, 하나님께 가장 민감한 시간을 가지는 날이니만큼 본인의 큰 부분도 손해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행위를 주님이 보시고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죄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하나님께 다가가야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우리가 골방에서, 또는 교회에서, 하나님과 민감하게 교감해야 할 때, 우리의 가치를 내려놓고 주님께 다가갈 수 있는 진실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그러면 어떤 죄를 주님께 고백해야 하겠습니까? 오늘의 말씀처럼 자기의 죄와 열조의 허물을 자복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죄에 대해서 자기의 죄뿐만 아니라 연대의식을 가지고 그 책임을 함께 지는 것은 시편 1066절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조상들처럼 범죄하여 사악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이러한 고백에서 알 수 있듯이 죄에 대한 연대의식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조 공동체와 언약을 맺으신 관계였기 때문입니다. 즉 자기의 죄와 열조의 허물은 땔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며, 하나님의 언약적 관계속에서 늘 회개해야 하는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과 피 한 방울 안 썩힌 관계이기는 합니다만, 앞서 말씀드린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때는 우리도 열조의 허물을 자복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 의무를 잊고 우리의 죄만 자복한다면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원죄에 대해서 구별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 주님의 택함받은 백성이 되었으므로, 우리의 죄를 자백함과 동시에 우리의 열조의 허물을 되돌아 보아, 다시는 그 허물되로 살지 않도록 결단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3절 이 날에 낮 사분지 일은 그 처소에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지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낮 사분지 일이라는 것은 고대 유대인들이 하루를 밤과 낮의 각 사등분씩 팔등분했던 것이었습니다. 여기서는 오전 6시부터 9시를 가르킵니다. 오전에는 처소에서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했습니다. 처소는 정해진 장소라는 뜻입니다. 이 당시에는 백성들이 직접 율법책을 읽을 수 없는 상황이라서, 에스라가 높은 강단 위에서 낭독하면, 레위인들이 그당시 상용어인 아람어로 번역하여 백성들에게 들려주는 것이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언어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묵상할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 아닌지 모릅니다. 누군가가 대신 성경을 통역해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처소에서 말씀을 묵상하며 율법책을 낭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율법책을 먼저 낭독해야 하는 것입니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죄를 자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죄를 자복하기 위해서는 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무엇을 어겼기 때문에 죄가 성립이 되는지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면 그 율법을 바르게 지켜 행해야할 것들이 보이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다 지켜 행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또한 율법을 벗어난 행위와 죄악된 습관으로 인해서, 우리가 죄 가운데 방황할 때가 있게됩니다. 이처럼 율법책의 힘은 우리가 죄인됨의 모습을 발견케 하는 놀라운 능력인 것입니다. 단순한 율법의 책이 아닌, 죄로부터 자유케 할 수 있는 깨달음의 통로, 참 자유의 통로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율법책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발견하고, 발견된 죄를 자복한 자는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습니다. 존경받으시게 합당하신 하나님께 우리는 겸손하고 공손한 자세로 주님을 경배할 수 있는 자격이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에 대한 조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께 자기의 죄와 열조의 죄를 놓고 회개하는 심령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수반되지 않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어쩌면 교만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지금의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주일 날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형식적인 예배철차를 통해서, 아무런 감정도 없이 예배를 드린다면 그것은 껍데기뿐인 예배일 뿐입니다. 그저 목회자의 말씀을 청하기 위해서 오는 목회자설교중심적 예배는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예배의 주인공은 오직 하나님 한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말씀을 우리가 묵상하기 원하고, 그 말씀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서 깨끗해진심령으로 자기에게 예배드려지길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단 일주일을 살아도 주님의 법도를 어기고 마음속으로, 외적으로 짓고 있는 죄악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자각이 없다면 그것은 신앙생활의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먼저 형식적 예배와 잘못된 방향으로 하나님께 다가가는 것이 아닌지 되돌아 보는 귀한 시간이 되시길 원합니다.

 

4절 레위 사람 예수와와 갓미엘과 스바냐와 분니와 세레바와 바니와 그나니는 대에 올라서서 큰 소리로 그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고

 

부르짖고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자아크>입니다. 고난을 당하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 큰 소리로 하나님께 간구할 때 하는 행동을 말합니다. 시편 225저희가 주꼐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치 아니하였나이다 에서도 부르짖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처럼 부르짖는 기도는 하나님께 구원을 얻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매 순간 위기의 순간에서도 주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목소리를 결코 외면하지시 않으시고, 그들을 위험가운데 건지시고 구원하였습니다. 우리가 회개의 심령으로 주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한다면 주님은 우리를 만나주시고 죄로부터 구원해주실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목소리를 귀 기울어 주시고 계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간절함이 필요하고, 오늘 말씀처럼 대에 올라서서 큰 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원합니다.

 

마지막 구절입니다. 5절 또 레위 사람 예수와와 갓미엘과 바니와 하삽느냐와 세레뱌와 스바냐와 브다히야는 이르기를 너희 무리는 마땅히 일어나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찌어다 주여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송축하올 것은 주의 이름이 존귀하여 모든 송축이나 찬양에서 뛰어남이니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모든 이름보다 존귀하며, 모든 송축이나 찬양에서 뛰어나신 분이십니다. 송축은 경사스로운 일을 기리고 축하한다는 의미입니다. 무엇이 경사스러운 일이고 축하할 일이겠습니까? 우리의 삶 가운데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섭리하심과 간섭하심과 내주하심과 역사하심과 그 사랑에 감사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송축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송축할 때는 역대상 1736절의 말씀같이 여화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찌로다라고 고백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먼저 주님을 만나기 위한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외형적으로는 하나님을 향한 베옷과 티끌을 무릎써야 합니다. 즉 단정한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이어서 세상의 모든 문화가 잠시 절교를 하고 회개의 심령으로 주님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죄를 자백할 때에는 우리의 죄와 열조의 죄, 조상의 죄를 놓고 기도하고, 구원해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죄를 놓고 기도할 때에는 전심으로 주님께 부르짖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송축받으시기에 합당할 주님을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자 특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기 위해서 이땅에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나주시고 치유하시고, 보호하시고, 사랑하시고, 끝내는 영원한 천국의 삶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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